국가유공자의 국가를 위한 숭고한 희생은 우리 모두가 생활 속에서, 미래에도 존경해야 할 가치다. 하지만 국가유공자에 대한 국가적 예우가 합당한지에 대해선 대부분 아쉬움을 토로한다.보훈정책의 현실과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남양주시 보훈단체장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신원식(91)대한민국6·25참전유공자회 남양주시지회장본회는 6·25참전유공자의 명예 선양과 복지 증진, 권익 보호에 이바지하며 UN 참전 회원국과 긴밀히 교류한다. 당시 본인도 제주도에서 훈련을 받고 부산보충대에서 바로 양구의 한 부대로 배치됐다. 그 중 1개 중대가 최
1951년 3월 7일 유엔군 한 부대가 남양주시 와부읍 도곡리 일대에서 한강을 남에서 북으로 도하했다. 한국전쟁에서 아군이 수도 서울을 다시 탈환한 중요한 순간이었다.남양주시는 이를 기념하려고 1985년 3월 7일 도하 지점에 ‘미 제25사단 한강 도하 기념비’를 건립했다. 그렇다. 한강을 도하한 부대는 미 25사단이었다. # 기념비기념비 가운데 보이는 딸기나 피망과 같은 열매 속에 번개가 치는 듯한 그림은 미 25사단 부대 마크다. 이는 사단 별명 ‘열대지역 번개(Tropic Lightning)’를 상징한다. 1941년 10월 아
한국전쟁 발발 당시 수도를 방위하려고 투입한 육군사관생도들은 준비가 안 된 상태였다. 불과 입교 20여 일밖에 되지 않은 생도들은 기본 군사교육도 없이 악화일로의 전선에 뛰어들었다.무섭고 두렵지만 국민을 지키려고 후퇴 명령도 무시하고 남양주시 불암산 자락에 근거지를 두고 활약한 ‘불암산 호랑이 유격대’가 존경스러운 까닭이다. 서울 수복을 불과 1주일 남기고 북으로 끌려가는 국민을 구출하면서 장렬히 산화해 안타까움을 더한다. 주민들의 기억 속 ‘불암산 호랑이 유격대’의 장엄했던 기록을 들여다본다.# 경험·장비·정보조차 없는 열악한 상
현재 대한민국이 민주주의라는 자유로움 속에서 숨 쉬는 원동력은 한국전쟁에서 활약한 선조들이다.남양주의 경우 해병대 활약에 힘입어 북한강지구에서 큰 전과를 올렸다. 포탄 속에서 승리를 쟁취한 해병대의 고귀함이라 하겠다.북한강지구 전투는 서울 탈환 작전의 한 가지로, 수도권을 완전히 확보하려고 1950년 10월 1일부터 7일까지 망우리고개부터 경춘가도인 북한강까지 공격하는 작전이었다. 적들이 경춘가도를 따라 철원 방면으로 철수하면서 기회만 포착하면 어느 한 군데를 다시 침공했기 때문이다.경춘국도 장악이 급선무인 상황에서 우리 해병대가
을사조약으로 대한제국 자주권을 박탈한 일본은 1906년 통감부를 설치해 식민지배를 위한 정책 기반을 구축하는 교육 정책을 도입한다. 침략을 정당한 양 꾸미고, 조선인의 저항을 누르기 위한 ‘민족 말살 정책’의 시작이다. 일본은 학제를 전면 개편하고 교육 내용을 바꾼다. 교과서 검정 규정으로 조선의 나라를 사랑하는 교육 내용을 봉쇄하고 민족 저항의식 바탕을 파괴하려고 한다. 하지만 조선 교육계는 이에 굽히지 않고 오히려 국권 회복의 필수 조건으로 교육을 주창한다.다행히 지방 유지를 중심으로 학교를 설립하거나 교육으로 국민을 각성하려는
남양주시 광릉숲에 자리잡은 봉선사는 한수 이북을 대표하는 사찰이자 대한불교조계종 31본산의 하나다. 대한민국 독립 역사에 가장 큰 뿌리 중 하나로 평가받기도 한다.누구보다 나라의 앞날을 고심했던 월초 스님부터 만주를 드나들며 전투에 참여한 운허 스님까지. 봉선사 스님들의 애국충절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제자와 후대의 삶까지 살폈던 선지자다운 마음에 머리가 절로 숙여진다. 봉선사의 뿌리 깊은 애국정신을 들여다본다.# 한수 이북 애국충절 상징 ‘월초 스님’임진왜란부터 병자호란, 한국전쟁까지 봉선사는 단 한 번도
우리는 바쁘다는 이유로 선조들의 숭고한 정신을 잊고 살아간다. 당시의 합법과는 무관한 판결문을 보거나 목격자 증언만 들어봐도 일제는 역사에 기리 남을 ‘폭압과 만행’을 저질렀다.선조들의 충정과 고통스러움을 천만분의 1도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다. 남양주시 진접읍에서 ‘대한불교조계종 봉선사’를 주축으로 일어난 만세운동도 그와 다르지 않다.명백히 정의로운 ‘조국의 독립’을 외쳤다는 이유로 스님들마저 모진 고문을 당해 평생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다. 인간다움은 철저히 내팽개쳐 버린 일본에 맞선, 애국충정으로 총칼에 맞선, 진정한 큰 어른을
우리가 사는 고장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해는 시민으로서, 나아가 국민으로서 자긍심을 높이고 지역 정체성의 바탕을 이룬다. 남양주에 전해 내려오는 충혼정신이 주목할 만한 까닭이다.국가 위기와 전란의 파고에도 선조들은 앞 시대의 정신을 잇고 후대에 귀감을 주는 삶을 살았다. 선조들은 전란통에도 ‘빛나는 역사’를 기록해 시민들에게 이어지도록 했다.남양주시민의 의식 속에 그러한 선조의 얼이 서렸다. 남양주 독립운동사는 경기도는 물론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에서 핵심을 차지한다. 역사에 기록할 만한 남양주 인물을 조명해 오랜 충혼의 전통을 되새
3·1운동을 펼친 선조들의 나라 잃은 슬픔을 현재 우리가 공감하기란 분명 쉽지 않다. 하지만 분명 존재하는 폭압의 역사이고, 선조들의 굳센 의지와 정신은 대한민국을 자유롭게 만들었다.무심코 당연하다고 지나치는 ‘현재의 자유’는 피맺힌 절규가 가득했던 3·1운동의 결정체다. 남양주시 조안면부터 와부읍까지 이어졌던 ‘용진 3·1의거’ 역시 다르지 않다.슬기롭게 나라를 보위해 반만년 긴 역사 동안 문화민족으로서 국권을 수호했지만, 1910년 경술년 국치에 왜적에게 국토를 짓밟힌 선조들의 투쟁의 역사다. 존경을 담아 그날의 기억을 되새겨
"대한 독립 만세!"나라의 독립과 자유를 위해 외친 피맺힌 이 여섯 글자는 우리 선조들이 맞선 혹독한 시대상을 대표한다. 입 밖으로 꺼내기만 해도 감옥으로 끌려가 지독한 고초를 겪어야만 했던 일제강점기 비참한 현실이다. 인성을 상실한 일본군 만행에 신체가 찢긴 가족을 본 유족들의 마음을 이루 헤아릴 길이 없다.남양주 화도읍 3·1만세운동 역시 다르지 않았다. 부당함에 맞섰던 그날의 정신은 34년째 ‘횃불 재현행사’로 이어진다. 선조의 한결같은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느껴 보려고 당시 상황을 복기해 본다.# 월산교회서 울려
남양주시가 국가유공자들의 헌신과 희생이 담긴 현재를 더욱 가치 있게 빛내려고 ‘보훈 정책’을 강화하는 데 발 벗고 나섰다.앞만 보고 달려온 대한민국이 잊었던 우리 영웅들에게 합당한 예우를 다하고, 그들의 고귀한 정신이 후세에 이어지도록 지자체가 먼저 나선 셈이다.이에 기호일보는 13차례에 걸쳐 남양주시 보훈정책의 현주소를 톺아본다. 그 첫 편으로 취임 직후부터 ‘보훈에 진심’인 주광덕 시장을 만나 당연한데도 특이한 보훈 이야기를 들어봤다.다음은 주 시장과 일문일답.-시장 취임 이후 국가유공자에 대한 예우를 강화하는 일을 최우선 과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