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은 행복의 약속이다." 프랑스 사실주의 문학의 선구자인 스탕달의 말이다.

 ‘2015 세계 책의 수도 인천’ 지정을 기념해 기호일보사가 진행하는 ‘인천시민과 명사가 함께하는 애장도서전’의 서른일곱 번째 명사로 선정된 진인주(63)인하공업전문대학 총장이 말하는 행복의 관점은 이렇다.

 "건축이나 디자인이 가진 아름다움의 양식이 다양한 만큼 행복을 바라보는 관점도 다양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잘 산다는 것에 대한 핵심 가치를 표현한 것이기도 합니다."

 건축과 디자인을 통해서도 행복의 가치를 찾을 수 있었다는 진 총장은 자신을 건축과 사랑에 빠지게 만들어 준 애장도서라며 알랭 드 보통의 「행복의 건축」을 추천했다. 같은 대학의 건축과 교수에게 추천받은 「행복의 건축」은 평소 건축물에 관심을 가졌던 진 총장에게 매우 흡족한 책이었다.

 "「행복의 건축」은 표지에 집과 나무, 그리고 소를 균형 있게 그려내 책 내용에 담아낼 메시지를 잘 표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건축을 비롯한 우리 사회가 중요시해야 할 주변과의 어울림을 잘 담아냈다고 할 수 있겠지요."

 책을 선택한 이유도 그리 복잡하지 않다. "전 세계에 포진한 다양한 건축물의 역사·문학·철학적 배경을 설명했기 때문에 애장도서로 골라봤습니다. 건축물을 보면서 단순히 디자인만 본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은 철학들을 보는 게 특이했고, 문학적 색깔을 넣은 것이 좋았습니다."

  # 재료공학 교수, 건축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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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IT 재료공학 박사인 진 총장이 건축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25년 전 미국 시카고를 방문하게 됐을 때다.

 시카고는 1871년 10월 대화재로 폐허로 변한 사건이 있었다. 이 화재를 극복하고 시카고는 작은 도시지만 굉장히 다양한 ‘하이라이트 빌딩’들이 많이 들어섰다.

 학회 일정에 맞춰 아내와 시카고의 자랑인 ‘건축 투어’를 하게 됐는데 도시를 끼고 강을 둘러보는 코스였다. 시내를 걸으면서 관광하는 것은 건물의 반대편이라 보이지 않는 부분이 있지만 ‘건축 투어’는 전문 가이드가 건물이 언제 이 위치에 지어졌는지부터 건축가와 소유주의 이야기까지 다양하게 설명해 줬다.

 "하루 동안 배를 타고 움직이는 코스인데 수많은 건물들 중 비슷하게 생긴 건물이 없더라고요. 건물주마다 건축사들을 다양하게 고용해서 그렇다고 건축 투어 전문 가이드가 설명해 주는데 건축가의 철학이 녹아 있다는 말을 듣고 감탄했지요."

 이때부터 진 총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새로운 곳에 가면 건축물을 보며 그 안에 담은 건축가의 철학을 읽어내는 습관이 들었다.

 그는 인천의 경제자유구역이나 신도시들도 시카고처럼 의식적으로 다양한 건물을 지어 사랑받는 곳이 되길 바란다고 한다.

 "시카고 건물의 건축주들이 다 다르게 짓길 바라고 있어요. 국가에서 계획적으로 건물을 짓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큰 틀에서의 계획만 기관에서 통제하고 안에 들어가는 주택이나 건물들은 건축가나 소유주들의 뜻이 많이 투영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지요."

 아내와의 여행 추억에도 건축은 빠지지 않는다.

 "가우디라는 스페인 건축가가 유명한데, 그 건축물을 집사람과 구경했었어요. 자기 집은 굉장히 소박하게 했는데 가우디가 지어준 집들은 곡선도 넣고 기둥도 희한하게 하지요. 특히 파밀리에 성당 꼭대기까지 올라간 기억은 평생 잊지 못하죠."

 사실 진 총장이 건축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유학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대학교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하고 재료공학을 배우기 위해 미국 보스턴에 공부하러 갔을 때 룸메이트가 마침 건축 전공 학생이었다. 진 총장은 사실 이때부터 건축과의 인연이 시작된 것이라며 웃어 보였다.

# 행복의 건축

 「행복의 건축」은 옛 건물에 담긴 역사와 건축의 경향, 철학 등이 담겨 있으며 무엇보다 사진과 곁들여 작가가 독자와의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 깊다.

 "행복에 대해 사람들마다 다르게 느끼는 것처럼 아름다움의 양식도 굉장히 다양하지요. 이걸 나타내는 것 중 하나가 건축입니다. 양식이 다양하지만 ‘아름다움은 행복의 약속이다’라는 가치 아래에서는 비슷한 표출이 아니겠느냐는 표현이 굉장히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책에는 미국에서 2004년 지은 건축물을 설명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건물이 주변 수풀에 둘러싸여 있는 사진이 게재됐다. 이 집에 들어가면 숲을 보는 게 아니라 마치 숲이 집을 바라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데, 아름다운 건축은 주변과의 조화가 매우 중요하다는 예를 보여 주고 있다.

 이에 비해 일본의 나가사키 근교에 네덜란드 마을을 만들어 놓은 ‘하우스 보탠스’라는 곳이 있다는데,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혹평을 해 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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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에 가 보고 싶어서 네덜란드 호텔에 갔는데 실제는 일본에 가서 묵은 것이었어요. 호텔부터 네덜란드 전통마을을 그대로 옮겨 놓고 돌까지도 원산지에서 가져왔다는데 작가는 일본에 네덜란드를 옮겨 놨다고 해서 평을 좋지 않게 했어요. 주변과 어울려야 한다는 뜻이었지요."

 진 총장은 이 책에서 ‘건물이 사람한테 말을 한다’는 부분을 가장 인상 깊은 메시지로 꼽았다. 건축가가 건물을 설계할 때 건물이 살아있다는 의식을 갖고 하면 더 좋은 건축이 된다는 의미다.

 사람들은 건물 안에서 보호받길 원하고 대화하는 것을 원한다. 건물과 생활하고 교감하는 것이 건축의 가장 큰 기능 중 하나다.

 "상당히 인상이 깊었습니다. 사람과 건물이 서로 말을 걸고 대화한다는 내용부터 의자도 각진 의자를 놓았을 때와 곡선이 있는 의자를 놓았을 때 대화 내용이 다르다는 뜻은 건물 짓는 것도 고민하지만 가구 등 배치도 중요하는 것으로 건축이 살아있는 것이라는 뜻이지요."

 # 진 총장과 인하공전

 진 총장은 문화와 철학이 녹아들고 또 대화할 수 있는 그런 건축물을 준비하고 있다.

 "학교가 기숙사를 짓는데 현재 설계 중입니다. 기숙사가 없어 학생들에게 죄 짓는 기분이었는데 올해 착공을 해서 내년 입주를 시작할 수 있을 겁니다. 주변과 어울리는 기숙사가 되길 바라면서 설계하고 있고, 잠만 자는 공간이 아니라 학생과 건물이 공생하고 주변과 아름답게 조화를 이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집무실이 그의 건축철학을 접목시킨 첫 작품이다.

 "집무실이 본인의 업무를 위해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학교 구성원들이나 손님들과 얘기하는 시간이 훨씬 많기 때문에 이들을 위해 디자인을 바꿔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탁자도 사각형에서 원형으로 바꾸고 자유롭고 친숙한 분위기를 내려고 했습니다. 색깔도 모던하게 바꾸고 파티션을 치우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편안하게 하려고 노력했어요."

 권위적인 모습을 타파하기 위해 책상도 반대편으로 옮긴 진 총장은 부산 출신 서울 토박이다. 서울대 화공과와 카이스트 석사(화공)를 거쳐 MIT에서 박사 재료공학을 전공했다. 박사가 된 뒤 3년 정도 미국 대학과 IBM 연구원으로도 근무했다.

 이후 진 총장은 1986년 9월 조교수로 인하대에서 출발해 30년을 교단에 섰고 2009년부터 4년간 인하대 부총장을 역임했으며, 2013년 3월 인하공전 총장이 됐다.

 "전문대는 대학과 다른 점이 꽤 있어요. 대학은 지성인 양성을 지향한다고 하면 전문대는 전문 직업인을 양성해야 하는 게 목표라서 결과물이 취업으로 나타나야 하는 것이 보다 명확한 곳이지요. 2년 또는 3년이란 굉장히 타이트한 일정에서 전문 직업인을 양성해야 해서 교수들이 해야 할 일이 훨씬 도전적인 게 특징입니다."

 그는 인하공전 교수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공전 200여 명의 교수들은 연구보다는 교육과 취업 지도에 비중이 높은데도 우리나라가 공업화되는데 인하공전 학생들이 기여할 수 있게 잘 가르쳤고, 어려운 현실에도 산학협력을 많이 하고 있어요. 학생들 현장실습과 취업으로 연결되는 단순한 목표도 있지만 산업체와 함께 연구하면서 순수학문 연구와 달리 업체들의 요구에 따라 현장 적응용 연구를 할 수 있어 자랑스럽고 고맙습니다."

 이렇게 진행하는 산학 연구 규모가 전국에서 제일 높은 수준이다. 그렇게 진 총장은 입이 마르도록 교수들을 칭찬했다.

 대담=한동식 정치부장 dshan@kihoilbo.co.kr

 정리=이창호 기자 ych23@kihoilbo.co.kr

 사진=최민규 기자 cmg@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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