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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 여기 우리 집 근처인데∼" "어, 여긴 우리 동네야∼" "그림으로 보니까 새롭다. 다시 한 번 가봐야겠어."

 지난달 22일 ‘경기 팔경과 구곡:산·강·사람’전이 열리고 있는 경기도미술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두 사내아이가 전시 작품들을 보며 떠들고 있다.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작품 하나하나를 신기한 듯 바라보고 있는 아이들은 신난 모습이다. 작품의 장르나 의미, 깊이는 아랑곳 않았지만 미술관을 찾아 낯설지 않은 익숙한 모습에 몰입도는 여느 전시와 다른 느낌이었다.

 지난 9월 5일 개막해 오는 15일까지 진행되는 ‘경기 팔경과 구곡:산·강·사람’전이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다. 1일 현재 누적 관람객 수 1만 명 가까이에 달하는 전시는 많은 의의를 남겼다는 평가다.

 최은주 경기도미술관장은 "이번 전시는 경기도를 알리게 된 것은 물론, 경기도의 정체성을 총체적으로 집약한 전시"라며 "풍경이라는 모티브를 통해 경기도의 전통성과 현대성을 알기 쉽게 담아냈다"고 자평했다.

 이는 비단 최 관장의 시각만은 아니다. 중학생 아들과 함께 미술관을 찾았다는 주부 이미숙 씨는 "아이가 다른 전시장에서는 지루한 표정을 짓기 일쑤였지만, 이번 전시는 친근한 풍경이 많아서인지 한 그림을 뚫어져라 쳐다보기도 했다"며 "개인적으로는 수원과 화성을 오가며 살아왔는데, 알고 있던 풍경 혹은 몰랐던 풍경들이 이질감을 주지 않고 새롭게 다가온 것이 가장 좋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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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전시는 1층 미디어아트로 형상화된 ‘박연폭포’를 시작으로 ‘경기도 풍경’이라는 명제 아래 종다양성의 작품들을 뽐냈다. 도내 31개 시군의 팔경과 구곡에 대한 신작과 구작이 어우러졌으며, ‘산·강·사람’의 조우를 담담하게 펼쳐냈다.

 2층 전시장 한쪽은 자연을 담은 영상을 틀어 놓고 관람객들이 잠시 쉬었다 갈 수 있도록 배려하는 등 ‘관람객 편의주의’적 구성도 이번 전시의 한 특징이다.

 여기에 전시는 풍경이라는 비주얼적인 요소 외에 ‘경기도의 문학’과 ‘경기도의 음악’이라는 인문학적 가치 또한 함께 드러내<박스기사 참조> 그야말로 ‘경기도의 정체성을 총체적으로 집약한 전시’라는 말에 부합됐다는 평이다.

 최은주 도미술관장은 "이번 전시를 통해 경기도의 정체성뿐 아니라 지역 미술관의 정체성, 그리고 역할, 기능 등을 두루 재인식할 수 있었다"며 "경기도는 더 이상 서울 주변의 지방사가 아니라 경기도 자체의 중앙사를 갖고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10년 후 같은 전시를 했을 때 10년 전과의 변화를 비교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오랜 역사만큼 배출한 문예가도 다채

 경기도는 이 지역의 오랜 역사와 더불어 풍부한 물자와 사람만큼이나 문학예술 분야에서 뛰어난 인물을 많이 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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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팔경과 구곡전에 전시된 경기지역 출신 작가들의 책.

조선후기의 실학자로 이름을 떨친 다산 정약용(남양주), 성호 이익(안산), 논개를 노래한 시로 널리 알려진 시인 수주 변영로(부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신소설의 주요한 작가로 활동한 이해조(포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이자 작가로 활동하며 근대이행기의 여성 자의식의 그 복잡한 상처를, 현실에서의 자기희생을 통한 과격한 실천으로 온몸으로 밀고 나간 나혜석(수원), 1922년 나빈 현진건, 월탄 박종화 등과 함께 문예동인지 「백조」를 창간해 이념과 양식에 있어 새로운 근대시 운동을 주도한 시인 홍사용(화성), 해방기에 ‘조선프롤레타리아 문학동맹’에 가입해 주로 빈궁한 현실과 프로계급의 참상, 계급 대립과 계급 투쟁을 그려낸 시인 박세영(고양), 한국 창작동화의 선구자로 동심천사주의의 상대적인 입장에서 시대의 특수 상황을 외면하지 않고 현실 밀착적인 작품으로 아동문학의 기틀을 다진 마해송(개성), 해방기 좌파 문예운동 조직인 ‘조선프롤레타리아 예술가동맹’에 적극 참여하며 소설과 비평에서 두드러진 활동을 한 박승극(수원), 이른바 ‘청록파’ 시인의 한 사람으로 문학사 안에 제 이름을 새긴 시인 박두진(안성), 대중에게 위안을 주는 시들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시인 조병화(안성), 역사소설에서 큰 성과를 거둔 소설가 유주현(여주) 등이 있다.

 이들 문학지리에 대한 성찰은 우리가 살고 있는 장소의 역사와 문화, 그 속사정과 내력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고, 나아가 고장에 대한 자긍심을 키워 지역적 정체성을 강화하는 데 기여한다.

 < 장석주, 「장소의 기억을 꺼내다-경기도의 문학지리」, 사회평론, 2007년>

 ※경기도의 현대 문학인들

 안양(기형도), 수원(나혜석), 인천·강화(오정희, 김중식, 함민복), 일산·김포(김지하, 최창균, 고형렬, 박철), 동두천(김명인), 군포(성석제), 성남·분당(윤흥길, 공지영), 안성(고은, 조병화, 박두진), 평택(박후기), 개성(박완서)

 

유유히 흐르는 강물 같은 ‘노래’

 #도입

 경기의 노래는 경기의 자연 풍광을 닮았다. 유유히 흐르는 한강 물과 같은 유장한 멋이 있고, 시원하게 쏟아지는 박연폭포를 닮은 경쾌한 맛이 있다.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온 민요뿐만 아니라 20세기 들어 새로운 문화 현상으로 등장한 대중가요에도 경기의 풍경은 다양하게 등장한다. 노래의 나그네가 돼 보고 듣는 경기의 풍경.

 #폐허에 설운 회포

 개성 만월대 황폐한 옛 성터에는 월색만 고요하다. 충성의 피 흐른 선죽교를 더듬으면 붉은 흔적 품은 돌장이 들먹인다. 허물어진 이 성터, 오백 년 고려성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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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팔경 구곡전에 전시된 경기 풍경의 내용을 담은 음반 레코드 판과 악보.

 #분단의 상흔

 송악산 고지에는 육탄의 피가 흘렀고, 고랑포 나루에는 이산의 눈물이 흘렀다. 고향을 찾으리라, 적진을 노리는 판문점의 달밤. 어버이 정 그리며 눈물로 적셔 보는 붉게 녹슨 기찻길.

 #역사를 품고 흐른 강

 모든 시간을 안고 모든 공간을 적시며 역사의 강, 한강은 흐른다. 다리는 끊어지고 사공과 나룻배도 사라진 분단의 강, 임진강과 한탄강도 흐른다. 상처를 안고 상처를 씻으며 강들은 모여 바다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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